1930년에 페루에 처음 도입되었을 때, 나스카 대평원의 상공에 새로운 비행 루트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조종사들은 나스카 사막이 기하학적인 형태로 덮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단조로운 땅은 마치 누가 꾸미려는 듯 아주 명료하고 아름답게 깔려있었어요. 파일럿들은 발견한 것을 외부에 알렸고 학자들은 이 현상에 점점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대의 관개 시스템이라는 설이 퍼졌습니다.
코사쿠 교수의 연구
뉴욕 롱아일랜드 대학의 폴 코사쿠 교수는 이 소식을 듣고 1941년에 페루로 향했습니다. 파르나 그 지역까지 가서 거기에서 그레이트 플레인즈까지 걸었습니다. 곧바로 주위에서 약 15센티미터 아래로 뻗는 선이 발견되었습니다. 바위는 온데간데없고 옥수수의 알갱이만한 작은 돌만 덮여있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큰 돌을 끝까지 밀어놓은 것 같았어요. 코사쿠 교수는 그것이 고대의 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선은 약 4킬로미터 떨어진 적갈색 언덕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코사쿠 교수는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태양은 마지막 내리막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1시간 후에야 산 정상에 당도한 해발 100미터의 정상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는 자신이 방사선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는 선도 있고 폭 미터의 선도 있었어요. 멀리서 보면 커다란 사다리꼴의 평야가 보였습니다. 도로도 관개 시스템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렇다면 실제 대사는 뭘까요? 코사쿠 교수님은 언덕 위에 서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면서 선 모양의 넓은 평야를 바라보았어요. 태양은 이미 지평선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오던 중 고석 교수는 기울어지는 태양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는 긴 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멈춰 서서 그 자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어요. 그랬던 게 틀림없어요. 그 줄은 타는 듯한 붉은 태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코사쿠 교수는 고대의 관개시설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남미 고대 문화의 천문학 연구에도 주력했습니다. 그는 잉카족이 태양의 진행 방향을 돌로 설정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돌의 머리에서 드리워진 그림자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태양의 진행 경로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사막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습니다만, 코사쿠 교수는 직선을 따라서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의 머릿속에서 이론이 세워졌어요. 즉, 해가 뜨는 점과 지는 점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계속 변화해서 선에 따라 달라지는 점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파종이나 수확기 등 특정 임계점에서 선이 그어져 있었다면 다음 해부터 매회 파종이나 수확의 정확한 날을 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코사쿠 교수는 그런 생각에 열심이었고 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죠.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발견을 열심히 보고했습니다. 나스카의 그레이트 플레인즈는 세계 최대의 천문력이 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학자로서 그런 가설에는 증명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의 우연한 관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리마에서 머무는 동안 코사쿠 교수는 마리아 라이히와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코사쿠 교수의 영문을 스페인어로 번역했습니다. 당시 독일 여성은 페루에 9년간 살았으며 수학뿐만 아니라 천문학이나 고고학에도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코사쿠 교수 자신은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이론을 학술적으로 증명하기에 최적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리아는 그 일에 매력을 느꼈고 곧 그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인생의 절반을 흥미롭게 기다리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즉, 계산과 측정, 기하학과 타임달력 기술, 천문학 등 페루의 고대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코사쿠 교수와 만남 이후의 마리아의 행보
반년 후 마리아는 나스카로 향했습니다. 12월 21일 남반구 하단부에서요. 지평선 위의 일몰점을 가리키는 선을 찾아주는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고대 문화에서는 전우나 하지가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출 직후에 사막 비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들의 나스카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기 때문에, 아직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단조로운 외관의 단층집을 지나면서 호젓한 길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먼지가 많고, 건조해서 더웠어요. 한 남자가 손수레를 끌고 내 곁을 지나가고 다른 남자가 빗자루를 어깨에 두르고 거리를 건넜어요. 길가에서는 아이들이 수다를 떨거나 놀거나 하고 있었습니다.
큰길에서 주내에서 유일한 녹지를 만났습니다. 연한 색의 나무들과 흩어진 야자수들이 교회 옆에 작은 공원을 이루고 있었어요.
아직도 머릿속으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어요. 일련의 비디오를 생각해 냈습니다. 질문이 많아서 오후의 마리아 라이히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나는 매우 긴장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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